이란-이라크 전쟁 이유와 결과 | 8년을 싸우고 국경은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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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이라크 전쟁은 1980년 9월 22일 이라크의 침공으로 시작해 1988년 8월 20일 휴전으로 끝났습니다. 8년을 싸웠지만 국경선은 전쟁 전과 같은 자리로 돌아갔고, 어느 쪽도 영토를 얻지 못했습니다. 사망자는 추정치가 크게 갈려 적게는 50만 명, 많게는 150만 명으로 봅니다. 20세기 후반 재래식 전쟁 가운데 가장 오래 이어진 전쟁으로 꼽힙니다.
이란-이라크 전쟁은 왜 일어났나
표면적인 명분은 국경을 이루는 강이었습니다. 두 나라 사이에는 샤트알아랍이라는 수로가 있는데, 이곳은 두 나라 모두 유조선이 드나드는 통로여서 오래전부터 다툼의 대상이었습니다. 1975년 알제 협정으로 강 한가운데를 경계로 삼기로 정리됐지만, 이라크는 이 합의가 자국에 불리하다고 봤습니다.
실제 방아쇠는 그보다 정치적인 데 있었습니다. 1979년 2월 이란에서 이슬람 혁명이 일어나 왕정이 무너지고 성직자가 이끄는 체제가 들어섰습니다. 같은 해 7월 이라크에서는 사담 후세인이 대통령이 됐습니다. 이라크는 인구의 다수가 시아파인데 권력은 소수 수니파가 쥐고 있었기 때문에, 이웃 나라의 시아파 혁명이 자국으로 번지는 상황을 정권의 위협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여기에 계산이 하나 더 붙었습니다. 혁명 직후 이란군은 지휘부가 대거 숙청돼 전력이 흔들리고 있었고, 이라크는 지금이 기회라고 판단했습니다. 후세인은 1980년 9월 17일 알제 협정 파기를 선언했고, 닷새 뒤 선전포고 없이 국경을 넘었습니다.
두 나라가 원래 어떻게 다른 나라인지는 이란과 이라크 차이에 정리해 두었습니다.
왜 8년이나 이어졌나
이라크의 계산이 첫 몇 달 만에 어긋났기 때문입니다. 짧게 치고 빠져 유리한 조건에서 협상하겠다는 구상이었는데, 이란은 침략당한 쪽이라는 명분을 쥐고 휴전을 거부했습니다. 이라크군은 개전 초 국경 지대를 밀고 들어갔지만 주요 거점을 함락하지 못했습니다.
1982년을 지나면서 전세가 뒤집혔습니다. 이란이 빼앗긴 땅을 되찾고 이번에는 이라크 영내로 들어갔습니다. 이 시점에 이라크가 휴전을 원했지만 이제는 이란이 거부했고, 전쟁은 어느 쪽도 결정타를 내지 못하는 소모전으로 굳어졌습니다.
전선이 고착되자 싸움이 다른 곳으로 번졌습니다. 서로 상대의 도시를 미사일로 때리고, 페르시아만을 오가는 유조선을 공격했습니다. 육지에서 이기지 못하니 상대의 석유 수출을 끊어 버티지 못하게 만들려는 방식이었습니다.
전쟁에서는 무엇이 동원됐나
화학무기가 쓰였습니다. 이라크군이 이란군과 자국 내 쿠르드 지역을 상대로 사용했고, 1988년 3월 북부 도시 할라브자에서 벌어진 일이 가장 널리 알려진 사례입니다. 화학무기로 다친 사람 가운데 상당수는 전쟁이 끝난 뒤에도 후유증을 안고 살았습니다.
이란 쪽에서는 정규군 외에 바시지라는 의용 조직이 대규모로 동원됐습니다. 훈련 기간이 짧은 인원을 대규모로 투입하는 방식이었고, 미성년자가 포함됐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이 전쟁이 20세기 후반 전쟁 가운데 특히 참혹했다고 평가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국제 규범이 이미 금지한 수단이 실제로 쓰였고, 그 사실이 전쟁 중에 충분히 제지되지 않았습니다.
다른 나라들은 어느 편이었나
이라크 쪽에 선 나라가 더 많았습니다. 혁명 이란이 지역 전체로 번지는 것을 우려한 걸프 지역 왕정들이 이라크에 자금을 댔고, 서방과 소련도 각자의 이유로 이라크에 기울었습니다. 이란은 국제적으로 고립된 상태에서 전쟁을 치렀습니다.
바다에서는 미국이 직접 개입하는 단계까지 갔습니다. 유조선 공격이 이어지자 미 해군이 호위에 나섰고, 1988년 4월에는 미군과 이란군이 페르시아만에서 교전했습니다. 같은 해 7월 3일에는 미 해군 함정이 이란 민항기를 격추해 탑승자 290명 전원이 사망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당시 전쟁의 무대가 됐던 그 바다는 지금도 한국이 들여오는 원유의 통로입니다. 그 구조는 호르무즈 해협이 막히면 한국은에 정리해 두었습니다.
전쟁은 어떻게 끝났나
유엔 결의를 이란이 받아들이면서 끝났습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1987년 즉각 휴전을 요구하는 결의 598호를 채택했는데 이란은 한동안 응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1988년 7월 18일 이란이 결의 수락을 발표했고, 8월 20일 휴전이 발효됐습니다.
이란 최고지도자 호메이니는 이 결정을 발표하며 자신에게는 독이 든 잔을 드는 일과 같다는 취지로 말했습니다. 이길 수 없다는 판단을 인정하는 발언이었고, 8년 동안 유지해 온 전쟁 명분을 스스로 접는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결과로 무엇이 남았나
영토는 그대로였습니다. 8년 전쟁의 결과를 한 줄로 요약하면 개전 이전 상태로의 복귀입니다. 국경선도 정권도 바뀌지 않았고, 전쟁의 원인이던 수로 문제도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 항목 | 내용 |
|---|---|
| 기간 | 1980년 9월 22일 ~ 1988년 8월 20일, 약 8년 |
| 개전 | 이라크의 선제 침공, 선전포고 없음 |
| 종전 방식 | 유엔 안보리 결의 598호 수락에 따른 휴전 |
| 영토 변화 | 없음. 전쟁 이전 국경으로 복귀 |
| 사망자 | 추정 50만~150만 명 (자료별 편차 큼) |
| 부상자 | 100만 명 이상으로 추정 |
| 포로 교환 | 2003년 마지막 교환 완료 |
기준: 유엔 안보리 결의 및 각국 공개 자료 · 2026년 7월 30일 확인 · 사망자 수는 양국이 공식 집계를 완전히 공개하지 않아 추정치가 자료마다 크게 다릅니다
남은 것은 빚과 무기였습니다. 이라크는 전쟁 자금을 걸프 국가들에서 빌렸고, 그 빚 문제가 1990년 쿠웨이트 침공의 배경 가운데 하나가 됩니다. 그 침공이 걸프전으로 이어지고, 다시 2003년 이라크 전쟁으로 연결되면서 이 지역의 지도는 계속 흔들렸습니다.
지금 상황을 이해하는 데 왜 필요한가
현재 구도의 상당 부분이 이 전쟁에서 만들어졌습니다. 이란이 정규군 외에 별도의 무장 조직을 키우고 주변국의 무장 세력과 연결망을 만든 방식도, 국제 사회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버티는 쪽으로 국방을 짠 것도 이 8년의 경험에서 나왔습니다.
반대로 이라크는 이 전쟁으로 재정이 무너진 뒤 회복하지 못한 채 다음 전쟁으로 끌려갔습니다. 두 나라의 오늘이 다른 이유를 찾으려면 1980년대를 먼저 봐야 합니다. 이란과 이스라엘의 관계가 어디에서 갈라졌는지는 이란 이스라엘 전쟁 이유에서 따로 다룹니다.
자주 묻는 질문
이란-이라크 전쟁은 종교 전쟁이었나요
종파만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이라크는 시아파가 다수인 나라인데도 시아파 이란과 싸웠습니다. 국경과 수로, 정권 안보, 지역 주도권 다툼이 함께 얽힌 전쟁으로 보는 편이 정확합니다.
누가 이겼나요
승자가 없는 전쟁으로 평가됩니다. 영토 변화도 정권 교체도 없었고, 양쪽 모두 막대한 인명과 경제 손실을 입은 채 원래 국경으로 돌아갔습니다.
왜 사망자 숫자가 자료마다 다른가요
양국이 완전한 공식 집계를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군인과 민간인을 나누는 기준, 실종자 처리 방식도 자료마다 달라 편차가 큽니다.
미국은 어느 편이었나요
전쟁 기간 대체로 이라크 쪽에 기울어 있었습니다. 다만 후반 페르시아만에서는 유조선 호위를 명분으로 이란군과 직접 교전하기도 했습니다.
지금의 미국-이란 갈등과 같은 전쟁인가요
다른 사안입니다. 이란-이라크 전쟁은 1988년에 끝난 두 나라 사이의 전쟁이고, 현재 진행 중인 상황은 당사자와 배경이 다릅니다.
정리
정리하면 8년을 싸우고 제자리로 돌아온 전쟁입니다. 얻은 땅은 없고, 두 나라 모두 사람과 돈을 잃었으며, 그 손실이 다음 전쟁의 씨앗이 됐습니다. 오늘 중동 기사에 나오는 이름들 상당수가 이 시기에 만들어졌다는 점만 기억해도 뉴스가 훨씬 잘 읽힙니다.
이 글은 2026년 7월 30일 기준으로 확인한 내용입니다.
참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598호 ·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 각국 공개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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